Quantcast
Channel: THE STARTUP BIBLE
Viewing all 648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매출 대비 펀딩 비율

$
0
0

스타트업이 수백억 원 규모의 펀딩을 받았다는 소식을 이젠 국내에서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만큼 한국의 벤쳐캐피탈 규모도 커졌고, 좋은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의미인 거 같다. 미국은 내가 다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큰 규모의 투자 소식이 많은데,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투자받은 규모와 이 회사의 실제 실력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데, 이럴 때 그냥 간단하게 계산해보면 재미있는 지표가 있다.

매출대비펀딩(revenue-to-funding) 이라는 지표인데, 스타트업의 가치를 비교적 간단하게 비교해볼 수 있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물론, 깊게 파고 들어가 보면 이 지표 또한 여러 가지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냥 가장 최근 12개월 매출 대비 총 펀딩 금액으로 계산해보기로 한다:
1/ A라는 스타트업은 지금까지 100억 원의 펀딩을 받았고, 최근 12개월 매출이 20억 원이면, 이 지표는 0.2
2/ B라는 같은 분야의 스타트업은 지금까지 100억 원의 펀딩을 받았고, 최근 12개월 매출이 200억 원이면, 매출대비펀딩비율은 2
3/ C라는 스타트업은 지금까지 50억 원의 펀딩을 받았고, 최근 12개월 매출이 500억 원이면 이 지표는 10

좀 간단한 숫자들이고, 비교를 위해서 극적으로 다르게 만들었기 때문에, 누가 봐도 C라는 회사가 가장 건강한데, 이 매출대비펀딩비율이 높다는 건, 이 회사가 투자금을 실제로 매출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좋다는 뜻이다. 비율이 낮다는 말은 투자금을 실제 매출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비슷한 분야의 회사들에 대해 이 비율을 계산해보면 은근히 재미있는 패턴이 나온다.


마켓플레이스와 확장성

$
0
0

망원시장우린 지금까지 꽤 많은 마켓플레이스에 투자했다. 투자를 시작할 때는 그냥 마켓플레이스는 남아도는 공급과 이런 공급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수요를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좋은 비즈니스라는 1차원적 생각을 했는데, 그동안 옆에서 이 수요와 공급의 플랫폼을 자세히 보면서 많은 걸 배웠고,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다. 이런 분야에 투자해보신 분들은 잘 아실 텐데, 마켓플레이스를 시작하는 거와 시작한 마켓플레이스를 확장하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마켓플레이스가 실패하는 이유는 성장하면서 너무 많은 출혈을 하거나, 출혈이 심하지는 않지만, 성장이 더디어서 추가 펀딩을 받지 못하거나, 또는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경쟁사에 뒤처지기 때문인 거 같다. 결론은, 대형 마켓플레이스를 만드는 건 정말로 어렵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이 분야를 보고 있다. 그리고 어렵지만, 이 어려운 부분을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하거나, 같은 방법이지만 더 비용 효율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팀을 계속 찾고 있다. 왜냐하면, 마켓플레이스야말로 인터넷이 기존 오프라인 비즈니스에 가져다줄 수 있는 장점을 가장 잘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켓플레이스는 근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준다. 즉, 사람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인데, 인터넷의 가장 큰 혁신 또한 사람을 연결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마켓플레이스가 제공하는 기능과 서비스의 핵심은 뭔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수요) 이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공급)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건데, 조금 더 근본적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양면 시장의 양 끝에 있는 사람들의 욕구를 잘 이해하고, 이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거라고 보면 될 거 같다.

우버나 에어비앤비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대표적인 마켓플레이스인데, 이 두 회사의 비즈니스를 보면 이런 ‘연결’의 속성을 잘 볼 수 있다. 우버는 택시를 소유하거나 차량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운전사와 승객의 ‘관계’와 ‘연결’을 소유하고 있다.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이다. 회사가 부동산을 소유하진 않지만, 집주인과 그 집에서 자는 손님과의 ‘매칭’을 소유한다. 이런 각도로 보면 페이스북이나 아마존 같은 회사도 비슷한 속성을 잘 활용해서 엄청난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는 마켓플레이스라고 이해하면 된다.

비즈니스로서, 그리고 투자상품으로서, 마켓플레이스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속성 때문에 상당히 빨리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수요를 만족시키는 공급을 회사가 직접 만들어서 제공하는 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데, 마켓플레이스는 수요와 공급을 원활하게 매칭만 하면 되기 때문에 빠른 시간안에 대규모의 스케일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인터넷 비즈니스가 사람을 대체시키는데, 마켓플레이스는 오히려 인터넷을 이용해서 더 많은 사람을 플랫폼으로 흡입시키기 때문에 시장도 상당히 환영하는 속성이 있다.

물론, 제대로 하는 건 어렵다. 플랫폼을 경쟁사보다 빨리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초기에는 돈을 계속 써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마켓플레이스가 사업 시작한 지 수년이 지나도 적자에 허덕거리고, 거래수수료는 경쟁이 생길수록 줄어들어서 결국 0%로 내려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펀드레이징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상당히 매력적인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분야를 보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서울신문>

크립토 웨이브

$
0
0

유니콘 회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자주 강조하는 부분이 몇 개 있다. 일단, 성장하면서 좋은 수치를 만들면 좋은 회사가 되겠지만, 기존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완전히 파괴(=disrupt)하지 못하면 유니콘이 되는 건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보면 대부분 유니콘 비즈니스가 블랙스완일 확률이 높다. 또 다른 건, 유니콘 중에서도 돋보이게 성장하는, 소위 말하는 데카콘이 – 10조 원 이상 가치 – 되려면, 시대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기술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했고, 투자를 오래 한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기존 패러다임을 바꿀 기회가 약 10년마다 한 번씩 오는데, 뒤돌아보면 많은 유니콘은 이런 10년마다 오는 파도를 잘 탔다는 걸 알 수 있다. 1960년대에 반도체가 상용화되기 시작했고, 인텔이 이 시점에 창업됐다.
이후, 반도체가 점점 더 고도화되면서, 이 반도체로 뭘 할 가라는 고민을 많이 하기 시작했는데, 1970년대에 PC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오라클과 같은 회사가 이 시기에 탄생했고, 컴퓨터는 반도체의 유용성을 극대화하는 기기였다.
그 결과로, 가정과 회사에서 모두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컴퓨터가 모두 따로 놀았다. 이 PC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세상이 하기 시작하면서, 80년대에 초기 인터넷이 미국방연구소(DARPA)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시스코라는 회사가 만들어졌다. 정확히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시스코는 앞으로 전 세계의 컴퓨터가 네트워크에 연결될 것이라고 믿었고, 이 연결을 위한 척추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스위처와 라우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는 메인스트림 인터넷은 90년대부터 완성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대표하는 회사인 페이스북, 구글, 그리고 아마존 모두 사람을 연결해주는 이런 인터넷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이 시점에 창업됐다.
10년 후인 2000년대에는 소셜의 시대가 열리면서 다양한 서비스가 탄생했고, 이 중 많은 회사가 유니콘 기업이 되었다.

실은, 2000년 초반부터 많은 사람이 이제 개발될만한 서비스는 다 만들어졌고, 인터넷으로 인한 혁신은 끝났다는 예언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때 데스크탑에서 모바일로 패러다임이 옮겨가면서, 다시 한번 엄청난 변화와 혁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다시 수많은 유니콘이 탄생했고, 현재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약 10년마다 오는 큰 파도를 잘 타는 창업가들이 유니콘을 만들 확률이 높은 거 같은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2020년, 2030년,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어떤 큰 파도가 올지 잘 예측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한 거 같다. 창업가나 투자자 모두에게.

많은 분이 동의할 거 같은데, 이 새로운 파도는 블록체인과 크립토가 아닐까 싶다(실은, 이 파도가 VR일 것이라는 예측을 많은 시장전문가가 했었는데, 틀렸거나, 아직은 아닌 거 같다). 과거 10년마다 볼 수 있었던 비슷한 현상이 이 분야에서 상당히 뚜렷이 보이는데,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블록체인과 크립토 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개발자,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취미로 뭔가를 이 분야에서 자발적으로 만들고, 시작하고 있는 일반인들이다. 인터넷 혁명이 시작했을 때의 분위기와 유사한 점이 너무 많은 거 같다.

얼마 전에 내가 지인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블록체인/크립토 분야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진짜 좋은 회사들이 많이 탄생할 거라고 했다. 대부분 동의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는데 – 이렇게 대부분 사람이 틀렸다고 하는 이 성질 자체도 유니콘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 특히 이 분야에서 최근 많이 발생하는 사기, 해킹, 투기, 도덕의 부재를 지적하면서, 이렇게 시장이 아사리판인데 무슨 긍정적인 혁신과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냐라는 이야기를 했다.

실은, 이분들의 말이 맞긴 맞다. 내가 봐도 참 민망할 정도로 이 시장은 FUD(=Fear, Uncertainty, Doubt)로 가득 차 있어서 혁신이라기보단 혼돈이 지배하고 있는 거 같다. 하지만,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시장이 생길 때마다 우린 이와 비슷한 과정을 반복하고 경험하는 거 같다. 이런 분들한테 내가 말씀드리는 일화가 있는데, 바로 Pets.com 이야기다. 반려동물 제품을 판매하는 Pets.com은 1999년 2월에 창업됐는데, 정확히 1년 뒤인 2000년 2월에 상장했다. 3,0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받은 이 스타트업의 매출은 60억 원, 손실은 700억 원이었고, 상장한 지 10개월 만에 파산했다. 실은, Pets.com은 당시 시장의 FUD와 FOMO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였고, 이와 비슷하게 망한 스타트업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런 난리를 겪으면서 투자자들의 돈 수조 원이 증발하고, 전 세계 경기는 여러 번 붕괴할 뻔했지만,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시장은 더 탄탄하고 건강해졌다.

블록체인과 크립토 시장도 이와 크게 다르진 않을 거 같다. 지금은 혼란스럽지만, 결국 사기꾼들은 추방될 것이고, 시장은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짐승피칭

$
0
0

beast mode on이젠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나도 벤처에서 일 할 때 VC 앞에서 많이 피칭했다. 피칭이 항상 그렇지만, 대부분 잘 안 됐고, 무수히 거절당했지만, 그렇게 거절당하면서 소중하고 의미 있는 관계가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거의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뒤돌아보면 당시 나를 만든 건 당시 있었던 우연한 만남과 거절이 아닐까 싶다. 자세한 건 이 글을 참고하면 된다.

실은 지금도 VC로서 출자자(LP)한테 피칭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우리 투자사 대표한테 피칭 관련 조언을 하자면 항상 최선을 다하는 건 기본이고, 정말 제대로 하려면, 내 안의 모든 걸 다 바쳐서 미친 듯이, 짐승같이 피칭하라고 한다. 즉, 완전 올인 하라는 말이다. 실은, 돈 없는 스타트업의 대표는 1년 내내 펀드레이징 모드로 살아야 한다. 돈은 없고, 돈 있는 사람을 언제 어떻게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VC들도 워낙 많은 창업가의 자료와 피칭을 접하다 보니, 정말로 이 분이 진정성과 혼으로 피칭을 하는지, 아니면 그냥 대강대강 하는지 금방 눈치채기 때문에, 항상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고, 실제 피칭을 하면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내 안의 짐승을 풀어서 피칭을 해도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기업가치 수조 원 짜리 회사를 만든 창업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 분의 개인 가치만 해도 1조 원이 넘고, 만약에 지분을 조금이라도 현금화했다면 실제로 소유한 자산이 수천억 원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이 다시 창업해서 투자유치를 하고 있었고, 나는 우연히 이 분이 피칭하는걸 옆에서 접할 수 있었는데, 온종일 감명받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창업가의 백그라운드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이 분이 피칭하는걸 봤다면,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고 패기 넘치는, 처음 창업하는 사람이 피칭하는거라고 느낄 정도로 열심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모든 미팅에 임했다.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오고, 침을 튀기면서 자신의 회사와 서비스에 관해 설명 하는걸 보면서, 속으로 나는 정말 많은 걸 느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하루에 4번 이상, 이렇게 투자자 지갑 안의 돈을 모두 훔칠 기세로 피칭하는걸 보면서 마치 무슨 짐승이 피칭한다는 착각까지 할 정도였다.

나중에 물어봤다. 그냥 본인 돈으로 사업을 해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 힘들게 치사하게 남한테 투자받는 이유를. 그러니까 일단 자신도 사업하면서 정말 좋은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여기까지 잘 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분들도 다 같이 잘 되고, 모두 다 돈을 벌게 해주고 싶은 이유가 가장 크다고 살짝 귀띔해주고, 다음 피칭 시간 늦었다면서 바로 또 택시를 타고 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 투자사는 대부분 돈이 절실히 필요한 입장에서 피칭을 하는데, 실은 위에서 말 한 이 분보다 덜 열심히, 덜 절박하게, 덜 짐승답게 투자유치를 하는데,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할 수 있는 좋은 생생한 사례가 하나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makemymerch>

에어팟

$
0
0

아직 2019년이 되려면 5개월 이상 남았고, 앞으로 내가 뭘 구매할지 모르지만, 현재까지 올 해 내가 구매한 것 중 가장 잘 샀다고 생각하는 건 애플 에어팟이다. 실은 에어팟이 처음 발표됐을 때 시장에서는 극과 극의 상반되는 피드백이 나왔고, 무선 이어폰에 대한 수많은 패러디가 나왔다(오랄비 전동칫솔 헤드랑 비슷한 건 정말 웃겼다)

실은 18만 원 이상이라는 가격이 부담돼서 며칠 동안 고민을 한 후, 주변에 에어팟을 이미 사용하는 친구들한테 정말 그 정도 가격 값을 하는지 물어봤다. 6명한테 물어봤는데, 모두 “신세계”라는 말을 하면서 무조건 사라고 해서 쿠팡에서 바로 질렀다. 애플 특유의 매끄럽고 세련된 디자인, 무겁진 않지만 고급스러움이 전달될 정도의 묵직한 in-ear 이어폰과 케이스, 이어폰을 넣고 닫을 때마다 손맛이 좋은 충전용 케이스의 자석, 귓구멍에 부담이 안 가는 우수한 착용감, 그리고 수준 높은 음질, 모두 최고다. 한쪽이라도 귀에서 빼면 음악 재생이 멈췄다가 다시 끼면 재생되고, 손가락 태핑으로 몇 가지 간단한 조작을 할 수 있는, 이런 세심한 디테일은 사용자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제 한 달 조금 넘게 사용하고 있는데, 엄청난 사용자 경험이다.

나는 좋은 제품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디테일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에 iOS의 시계에 대한 에서 애플의 세심한 디테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스티브 잡스는 죽었지만, 완벽한 제품에 대한 고집과 열정은 아직 애플에 잘 살아있는 거 같다. 시장이 정말로 원하는 게 제품의 본질에 잘 녹아 있어야지만,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고, 기대했던 거 보다 더 좋은 사용자 경험은 브랜드 충성도와 함께 그 브랜드에 대한 종교적 믿음을 만드는데, 한동안 시들었던 애플에 대한 내 존경과 사랑이 에어팟 때문에 다시 생겼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대충 제품 만들어 놓고, 창조적인 마케팅이라고 포장하면서, 인기 연예인을 광고에 등장시키는 이런 얄팍한 상술은 이제 더는 통하지 않는다. 내가 항상 강조하지만,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면 그 제품 자체가 최고의 마케팅 전략이다.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제품이 줄 수 있는 본질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 끊임없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회사는 오래 못 간다.

에어팟은 내가 지금까지 사용해본 최고의 무선 이어폰이다. 그것도 다른 제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하다. 기능, 디자인, 품질, 모든 면에서. 모든 스타트업은 이런 제품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길이면 좋고, 아니라도 좋고

$
0
0

지난주에 브리티시 오픈 골프 대회가 열렸다. 작년에 조던 스피스 선수가 완전 극적으로 승리하는 걸 생방송으로 다 봤는데, 올해는 타이거 우즈가 기대 이상으로 선전해서 4일 내내 눈이 너무 즐거웠다. 그냥 디오픈(The Open)이라고 부르는 브리티시 오픈은 해안 지역을 따라 만들어진 링크스(Links)라는 코스 지형에서 개최되는데, 링크스 코스는 자연 목초지에 그대로 골프장을 조성하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녹색 잔디가 깔린 골프장과 아주 다르다. 또한, 바다 옆에 있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기상, 해풍을 뚫고 자란 무릎까지 오는 러프, 사람 키보다 높은 벙커 때문에 다른 메이저 대회보다 선수들의 평균 점수는 항상 나쁘다.

이번 대회도 과거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이틀 경기를 거의 다 봤는데, 페어웨이에서 공을 치는 선수 보다 그 옆의 러프나 벙커에서 공을 치는 선수들이 더 많을 정도로 모든 선수가 고전하고 있었다. 모두 다 고전하는데, 상위권 선수들은 왜 점수가 좋았을까? 상위권 선수들이라고 모든 샷을 다 잘 칠 순 없다. 멘탈이 중요한 게임이라서 그런지, 잘 치는 선수도 페어웨이를 많이 놓치고, 깊은 벙커나 러프에서 스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선수들의 공통점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 한 샷이 항상 있다는 점이다. 상위권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 모두 다 이런 결정적인 샷이 있다. 그린이 보이지도 않는 언덕 밑의 러프에서 바로 홀 옆으로 공을 착지시키는 샷이나 그 높은 벙커에서 바로 홀에 집어넣는 그런 한 샷 말이다.

스타트업 운영도 이와 비슷한 점이 많은 거 같다. 스타트업 인생은 길 보다는 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진흙 길, 가시밭, 살얼음 등….모두 어려운 싸움을 하면서, 나도 언젠가는 장애물이 없는 정상적인 길로 진입하는 꿈을 꾼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길이 아닌 곳을 가다가 갑자기 리바운드해서 사업이 잘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 내 주변에 잘 된 팀은 모두 이렇게 갑자기 어떤 특정 계기로 인해서 정상적인 길로 진입을 했다. 위에서 말한 그 ‘한 샷’ 때문이다. 그동안 그렇게 러프로만 가다가, 곧 망하겠다는 위기까지 가지만, 이 한 샷으로 갑자기 product-market fit이 찰지게 만들어지면서, 사업이 유턴을 한다.

그래서 인생은 한 방이라는 말들을 하나보다. 골프 선수든 벤처기업가든 인생에서 필요한 건 딱 한 번의 좋은 샷이다. 여러 번 치면 좋겠지만, 결정적인 한 샷이면 충분하다. 여기서 한 가지만 더 말하고 싶은 건, 겉으로 보면 그냥 그 한 샷이 운이 좋아서 나온 거 같지만, 실제로는 수년, 수십 년 동안 준비하고 연습을 했기 때문에 그런 샷이 가능한 거다. 반복을 통한 연습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이런 샷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항상 길로 가면 좋지만, 길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계속 앞으로 가면서, 준비하면,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기회가 올 것이고, 그 기회를 제대로 잡으려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Hustle의 승리

$
0
0

나는 hustle이라는 말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투자사 중 힘든 상황이지만, 화이팅 넘치게 싸우는 창업가들을 존경한다. 실은 존과 나도 hustle로 스트롱이라는 브랜드를 열심히 만들고 있고, 우리도 다른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매일 고생하면서 힘들게 앞으로 꾸역꾸역 나아가려고 열심히 몸으로 뛰는 허슬러들이다.

나는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한테 믿음을 잃었다면 빨리 그만두지만, 계속 믿는다면 악착같이 hustle 하라고 조언하는데, 최근에 이런 hustle의 중요함을 우리 투자사를 통해서 다시 한번 제대로 경험했다.

전에 한 번 포스팅 한 적이 있는 마이듀티의 정석모 대표님이 얼마 전에 카카오벤처스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솔직히 10억 원이면, 요새 기준으로는 그렇게 큰 투자금은 아니라서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 투자를 받기 위해서 마이듀티 팀이 그동안 아주 멀리 돌아왔던 길을 내가 잘 알기에, 그리고 거의 2년 동안 무수히 많은 거절을 당한 걸 내가 다 알기 때문에, 이번 투자는 나한테도 상당히 시시한 바가 컸다. 실은 간호사 교대근무 캘린더 마이듀티의 사용 도는 엄청나게 높다. 한국 간호사 중 70% 이상이 이 앱을 사용하고 있고, 홍콩의 경우 90%가 사용한다. 하지만, 이 팀이 항상 부딪혀서 넘어졌던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과 명확한 수익 모델의 부재였다. 지난 2년 동안 나도 많은 VC들한테 소개를 했지만, 몇 번 미팅하다가 이런 이유로 수 없이 미끄러졌다. 그래도 이 팀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개발하면서 테스팅했다. VC들이 자금을 제공하지만, 이 앱의 실제 고객은 간호사이고, 고객은 계속 마이듀티 앱을 종교적으로 사용했고, 그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약하다고 지적받은 수익모델도 다양하게 실험하면서 가장 좋은 모델을 정교하게 다듬어 나아갔다. 그러면서 계속 투자자 문을 두드렸고,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을 두드렸다. 그러다 보니, 카카오라는 좋은 투자사가 문을 활짝 열어줬다.

또 다른 회사는 울산과기원 팀 페달링이다. 실은 페달링은 원래 학생과 과외선생을 중개해주는 마켓플레이스로 시작했고, 거의 2년 동안 이 비즈니스를 했다. 내가 옆에서 잘 봐서 아는데, 공대선 대표 정말 열심히 했다. 아마도 2년 동안 할 수 있는 거는 거의 다 시도해봤는데, 그래도 실적은 좋지 않았다. 실은 올 초에 나는 이 팀한테 인제 그만 하라는 제안까지 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이건 안 되거나, 이 팀이 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혼자 마음속으로 결정했고, 젊고 똑똑한 이 친구들도 이제 더 늦기 전에 자기 갈 길을 잘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페달링 팀은 죽을 땐 죽더라도 찐하게 한 판 더 싸우고, 그래도 안 되면 장렬하게 전사해야겠다는 각오로 마지막 피보팅을 시도했다. 그 비즈니스가 클래스101이라는 취미클래스 플랫폼인데, 이 서비스가 그동안 페달링 팀이 경험하지 못했던 경이로운 성장을 하고 있다. 실은, 나는 클래스101에 대해서도 초반에는 회의적이었고, 이것도 망해서 페달링 곧 문 닫겠다는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웬걸…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물론, 매우 행복한 빗나감이었다. 실은, 과외 매칭 플랫폼을 할 때는 투자자들이 만나주지도 않았는데, 요샌 VC들이 거꾸로 관심 있다고 연락이 너무 많이 온다.

마이듀티랑 페달링을 보면서 다시 한번 많은 배움을 얻었다. 실은, 나 같으면 정석모 대표같이 2년 동안 투자 못 받고 시장과 수익모델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들었으면, 계속 비즈니스 할 수 있었을까?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나 같으면 공대선 대표같이 원래 하던 게 잘 안돼서 회삿돈은 바닥난 지 오래됐고, 낭떠러지가 눈앞에 보이는데, 새로운 비즈니스로 피보팅해서 처음 사업하는 것처럼 열심히 할 수 있었을까?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다.

인연

$
0
0

세상 참 좁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많이 한다. 나도 자주 느끼는데, 이런 좁은 세상에서 재미있고 신기한 관계들이 많이 만들어지는 거 같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사람의 관계와 인연이라는 게 참 재미있어서 포스팅해본다.

올해 만큼은 아니지만, 2012년 한국의 여름도 무더웠다. 이때 존이랑 나는 스트롱 첫 번째 펀드를 만들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내가 포스팅한 글처럼, 이 과정을 요약하자면 수많은 ‘거절의 연속‘ 이었다. 실은 우리 둘 다 그 전에 각자의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투자 유치 경험은 나름 있었지만, 펀드를 운용하는 VC로서 투자를 유치하는 건 처음이었고, 처음 하는 VC라서 과거의 성공 경험은 커녕 track record가 전혀 없기 때문에, 미팅하는 기관마다 거절을 당하고 있었다. 더운 여름에, 더운 옷을 입고, 가는 곳 마다, “두 분은 믿을 수 있고, 훌륭한 능력을 갖추신 분이지만, 아직 성적표가 전혀 없어서 저희가 들어가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일단 투자 실적과 성과가 어느 정도 생기면, 그때 다시 한번 연락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맥이 빠졌다. 하루에 미팅 4~5개를 끝내고 부모님 집으로 돌아오면(당시에 우린 보수 받을 펀드가 없어서 최대한 돈을 절약하기 위해 나는 한국 출장 나오면 부모님 집에서 신세를 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땀에 절어 있었다.

지금은 기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당시 한국 2위의 포털 업체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이었다. 우리 투자사 비석세스의 행사에서 처음 만났던 거 같은데, 우리는 다음에서 투자를 담당하던 김주리 팀장님을 알게 되었고, 스트롱 펀드 1호 출자를 위해 여러 번 미팅을 했다. 실은, 다음의 입장에서도 우리같이 성과가 전혀 없는, 펀드라고 하기에는 너무 민망할 정도로 작은, 이런 신생 펀드를 검토하는 거 자체가 많이 어려웠을 거 같다. 그래서 이미 많은 잠재 LP들이 거절했듯이, 다음도 당연히 안 될 줄 알았다(물론, 그래도 우리는 항상 해 왔듯이, 엄청 열심히 했다). 그런데 정말 기적과 같이, 다음에서 스트롱 1호 펀드 승인이 됐고, 그동안 결정하지 않고 옆에서 눈치만 보던 다른 LP들도 다음의 출자가 확정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투자 승인을 하면서 우리 1호 펀드는 오랜 가뭄 뒤에 극적으로 결성 마무리됐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항상 김주리 팀장님과 다음에 감사의 마음이 많다. 왜냐하면, 이게 안 됐으면 아마도 스트롱 1호 펀드도 없었을 것이고, 스트롱벤처스 자체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6년을 fast forward 해보자. 이제 스트롱 투자사 중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진 회사들이 생기고 있는데, 이런 회사 대표들한테 나는 항상 이제 회사에는 경험이 많은 어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도 이런 고민이 있었는데, 위에서 언급한 김주리님이 얼마 전에 텀블벅의 COO로 조인하셨다. 그리고 다양한 큰 회사에서, 많은 경험을 하셔서 그런지, 회사에는 이미 눈에 띄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텀블벅에는 우리가 1호, 2호 펀드 모두 투자했는데, 이런 좋은 관계와 인연이 만들어져서 참 신기하고 재미있다. 앞으로도 계속 좁은 세상에서,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부동산다이어트 업그레이드

$
0
0

우리 투자사 온라인 부동산 부동산다이어트에 대해서는 내가 몇 번 포스팅 한 적이 있다. 나도 고객이기 때문에, 부동산다이어트가 실제 중개 업무는 기존 공인중개사보다 더 깔끔하고, 전문적이고, 저렴하게 잘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회사의 실적과 고객의 리뷰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하지만, 항상 아쉬웠던 부분이 온라인 플랫폼으로서의 소프트웨어 play가 약하다는 거였다. 미국의 Redfin이나 한국의 호갱노노와 같이 고객이 일단 접속하면, 다양한 정보와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플랫폼에 체류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부동산다이어트는 이 부분이 항상 약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하면서, 실제 부동산 거래를 하기 전에 고객이 보고 싶어 하는 다양한 데이터를 이제 어느 정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다음은 내가 보기에 사용자한테 매우 유용한 기능들이다:
1/ 재산세/건강보험료 – 특정 지역의 아파트 구매 시 발생할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그리고 건강보험료를 공시지가를 바탕으로 계산하여 제공
2/ 재건축 진행단계 – 여러 지역에서 진행 중인 재건축 단지들이 어떤 단계에 있는지 볼 수 있어서, 투자 수익성이 높은 아파트를 쉽게 고를 수 있음
3/ 임대사업자 등록비율 – 임대사업자의 숫자와 비율을 보여줌. 비율이 높은 지역은 집주인이 입주하지 않고 임대를 하는데, 이는 투자자들이 향후 집값 상승의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고 투자한 곳인 경우가 많음
4/ 노후 아파트 비율 – 리모델링은 15년 이상, 재건축은 30년 이상 연식의 아파트의 경우에 가능. 어느 지역에 리모델링 또는 재건축될 아파트가 많은지 안내해 줌
5/ 아파트 시가 총액 – 한 단지의 모든 아파트의 시가총액 합을 볼 수 있음
6/ 아파트 월세 수익률 – 20평, 30평, 40평 각 평형의 아파트 구매 시 받을 수 있는 연간 월세 수익률. 강남이 수익률이 제일 높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지방의 매매가가 낮은 아파트 수익률이 높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됨
7/ 부동산 정책 지구 –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 표시 및 설명 제공. 각각의 투기 지구별로 금융(대출 가능 금액) / 분양(청약 조건 제한) / 세금(종합 부동산세, 양도소득세, 재산세), 주택 보유 가능 수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수하고자 하는 지역이 어느 규제 지역인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함
8/ 5개 항목 기반 아파트 리뷰 비교 – 각 아파트의 상대적 강점이 무엇인지 5각형 그래프로 쉽게 볼 수 있음
9/ 인구수/세대 수-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인구수, 세대 수, 세대 당 인구수 변동 확인 가능(아파트의 가격은 인구수 보다는 한 주택을 차지하는 단위인 세대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음). 세대당 인원수의 변동에 따라 해당 지역에서 수요가 많은 아파트의 평형을 예측할 수도 있음
10/ 데이터 대시보드 – Top 300위 아파트 시가 총액, 월세 수익률 등의 데이터를 지역별로 제공

실은, 이 중 일부는 이미 다른 서비스도 제공하는 기능이지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면서, 이 정보를 기반으로 고객이 부동산 거래 결정을 하고, 부동산다이어트를 통해서 실제 거래까지 완료할 수 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네이버 부동산 앱으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고, 실제 거래 자체는 동네 중개업소를 통해 완결하는 기존의 깨진 사용자 경험을, 부동산다이어트라는 단일 플랫폼에서 통합할 수 있다는 건 회사나 사용자가 모두 win-win 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Handshake

$
0
0

Handshake우리가 첫 번째 펀드에서 투자한 미국 회사 중 Purse라는 스타트업이 있는데, 내가 이 회사와 교포 창업가 Andrew Lee에 대한 글을 전에 여기에 올린 적이 있다. Purse는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왔고, 유니콘이 되진 않았지만, 나쁘지 않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 회사의 대표 Andrew도 워낙 똑똑한 엔지니어고, 비트코인에 일찍 눈을 떴기 때문에, 암호화폐나 ICO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이 분야에서 좋은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재미있는 프로젝트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 분이 아주 오랫동안 조용히 준비해오던 Handshake 라는 프로젝트의 처음이자 마지막 펀딩이 얼마 전에 마무리됐다. 스트롱도 운 좋게 a16z Crypto, Founders Fund, Polychain, Draper Associates 등의 훌륭한 top VC들과 함께 참여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코인데스크 기사를 읽어보면 된다. Handshake는 일단 좋은 개발자들의 신박한 프로젝트다. 우리 투자사 Purse의 Andrew Lee와 lightning network를 만든 Joseph Poon, 그리고 비트코인 업계에서 유명한 또 다른 교포 Andrew Lee를 주축으로 이 동네에서 개발 좀 한다는 사람들이 좋은 의도로 모였다.

그리고 요즘 좀 질려버린 기존 ICO랑 다른 점이 몇 개 있다. 실은 이 팀은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 ICO 모델을 완전히 엎어버리는 걸 지향하고 있다. 일단 투자할 법인 자체가 없다. 다른 ICO와 같이 토큰을 나눠주기 위한 재단도 필요 없기 때문에, 우리는 Handshake라는 프로토콜에 투자한 것이다. 이번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전체 프로토콜의 7.5%를 구매했고, 앞으로 이 프로토콜은 더이상의 투자를 받지 않을 것이다. 따로 할당해놓은 7.5%는 프로젝트팀에 할당될 것이고, 이 부분이 제일 재미있는데, 나머지 85% 토큰은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공짜로 배포할 예정이다. 이 방법 또한 일반적인 에어드롭과는 상반된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 진 그 누구도 모르지만, 이 프로젝트와 이 팀한테 우리가 거는 기대는 상당히 크다. 아주 큰 일을 할 수 있는 팀이고, Handshake가 실현된다면 재미있는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Handshake 웹사이트>

모서리 자르기

$
0
0

2주 전, 북해도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있던 호텔에서 다른 건물로 가려면 모노레일을 타고 5분 정도 가야 하는데, 이걸 타면서 일본사람들의 꼼꼼함, 장인정신, 그리고 원칙에 충실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아주 오래된 구식 모노레일이라서, 한번 놓치면, 한 15분을 기다려야 한다. 날도 덥고, 앉을 공간도 없어서 기다리는 거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차가 오면 바로 들어가서 앉고 싶은데, 승객이 내리고 다시 타기까지의 과정을 준비하고 처리하는 기사님의 태도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

일단 차가 도착하면, 운전석에서 기사가 먼저 내린다. 아주 천천히 가는 모노레일이고, 거리도 5분밖에 안 돼서, 솔직히 한국 같으면 기사분이 그냥 대충 앉아서 운전할 거 같은데, 이 일본 기사는 2중으로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탈 때마다 내가 눈여겨봤는데, 벨트를 매는 순서가 항상 매뉴얼대로 같았다. 일단 기사가 내리면, 승강장 쪽의 출구를 열고, 그러고 나서 모노레일 문을 열면 타고 있던 손님들이 내려서 승강장 밖으로 나간다. 그 이후에는, 각 차에 들어가서, 의자랑 바닥을 한 번씩 다 닦고 청소하고, 혹시나 좌석이 고장 난 게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다. 내가 여러 번 봤는데, 좌석을 확인하는 방법도 항상 같았다. 이렇게 하고 난 후에, 운전석에 있는 일지에 검사 시간과 이상 유무를 체크하고, 그러고 나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줄 서 있는 입구를 열면, 그제야 모노레일을 타게 된다. 5분 모노레일 타기 위해서 차가 승강장에 도착한 후 거의 5분을 기다리는 셈이다. 모노레일 기사는 이 과정을 하루에도 몇십번씩, 항상 같은 방법으로 반복했다.

대부분의 한국분은 뭐 그렇게 깐깐하게 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작은 모노레일이고, 5분 가는 건데, 굳이 매번 저렇게 하지 말고, 바쁠 때는 그냥 운행하고, 한가할 때 한 번 정도 체크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할 텐데, 이 기사분이 개인적으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일본사람들이 원래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난, 후자인 거 같다 – 어쨌든 일을 처리하는 매뉴얼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 매뉴얼을 원칙적으로 지킨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태도는 일과 인생 모두에 있어서 중요하다. 영어에는 cut corners라는 말이 있는데, 원칙대로 하지 않고 지름길이나 꼼수를 쓴다는 의미이다. 네모의 모서리를 다 잘라서, 조금 더 빠르게 코너를 돈다는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렇게 하면 당장은 남들보다 더 빨리 가고, 남들보다 조금 더 벌겠지만, 절대로 오래 가지 못한다. 우리 주위에도 보면 잠시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회사들이 너무나 많은데, 이렇게 모서리를 자르면서 기본과 원칙을 무시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위의 모노레일 기사와 같이 누군가 깐깐하게 이런 원칙을 고수하면, 그걸 옆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일본은 사회 전반에 이런 원칙을 지키는 문화가 깊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위의 기사한테 그 누구도 화내지 않고, 질서와 원칙을 모두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아직 한국은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사회 질서에 있어서나, 제품을 만듦에 있어서나, 모두 다 꼼수 쓰지 않고, 기본에 충실할 수 있는 그런 날이 곧 오길 바란다.

주체적 사고

$
0
0

장하준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책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를 얼마 전에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장교수인지 다른 사람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떤 동양인 학생이 학교 과제에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자기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보다는 이미 죽은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종합해오자, 담당 교수가 버럭 성을 냈다고 한다.
“니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써오라고 했지, 아담 스미스가 뭐라고 얘기했는지, 칼 마르크스가 뭐라고 얘기했는지가 무슨 상관이야!” 라면서.

이런 현상을 장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양에서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항상 “옛날에 맹자도 이런 얘기를 했고, 공자도 이런 얘기를 했고”라면서 고전을 인용해야 하고, 그렇게 과거의 권위를 끌어대야지만 자기가 뭔가를 한 것 같은 느낌을 대다수의 동양인들이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해야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수긍을 하는데, 이 현상을 동양과 서양에 대해서 매우 잘 아는 어떤 서양 교수가 “서양에서는 다 옛날에 한 얘기도 어떻게 하면 내가 새로 발명한 얘기처럼 하려고 하는데, 동양에서는 굉장히 새로운 얘기를 하면서도 옛날 사람들 이야기를 꼭 인용한다.”라고 정리했다고 한다.

나도 내가 하는 이야기를 조금 더 신빙성 있게 만들기 위해서, 나보다 훨씬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데, 이걸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봤다. 실은, 오늘도 미팅하면서 “미국에도 혹시 비슷한 서비스가 있나요? 펀딩은 얼마 받았나요? 그 회사는 잘하고 있습니까?” 등의 질문을 했고, 처음 들었을 때는 별로였는데 미국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잘하고 있고, 투자를 엄청나게 받았다고 하니, 왠지 이 회사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다. 남이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내 생각이 어떻고, 이 창업가가 이 비즈니스를 정말 잘하고 있냐가 핵심인데, 난 자꾸 내 생각보다는 남의 생각에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한번 생각해봤다.

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정말 복잡하다. 많은 것들과 많은 사람이 상호 작용을 하는 세상이고, 이런 세상에는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이런 의견을 모두 다 종합한 후에 혼자 생각을 해서 나만의 주체적인 답을 끌어내야 하는데, 실은 나도 그렇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 투자사 대표들한테 스스로 생각하라고 강요하고 있진 않은지 모르겠다.

좋은 대마초

$
0
0

마리화나 시장의 성장이 암호화폐 시장의 성장만큼 재미있고 빠르다는 생각을 요새 하고 있다. 껌 하나로 왕국을 만든 리글리 가문의 William Wrigley Jr. II가 최근에 의료용 마리화나 제조업체 Surterra Wellness라는 회사에 700억 원 규모의 펀딩을 lead 하면서, 이 회사의 의장직을 맡았는데, 껌을 팔면서 갈고 닦은 유통과 브랜딩 경험을 기반으로 회사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마리화나 맛 껌이 곧 팔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마리화나(=대마초, cannabis) 시장의 크기에 대해서는 기관마다 발표하는 수치가 아주 다르다. 어떤 시장조사 기관은 2030년까지 80조 원이 넘을 거라고 하고, 어떤 수치는 20조 원 안팎이 될 거라고 하는데, 아마 모두 동의하는 건, 이 시장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거다. 마리화나는 의료용과 레저용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의료용은 미국 30개 주, 레저용은 9개 주에서 합법화되어 있다. 아직 미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합법화 전이라서 은행이나 큰 기관은 이 시장에 투자를 자제하고 있지만, 이건 시간 문제 일 거 같다. 특히, 올해 10월 캐나다에서는 대마가 연방정부 차원에서 합법화될 예정이라서, 미국에서 캐나다 시장으로 많은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시장의 전문가도 아니고, 한국은 이 시장 자체가 아직 없기 때문에 경험은 없지만, 많은 VC가 이 시장에 돈을 투자하고 있고, 젊고 똑똑한 창업가들이 다양한 실험을 하는 걸 보면, 꽤 크고 재미있는 시장이 앞으로 형성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대마초에 대해서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은 술이나 담배보다 중독성이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소비자가 술과 마리화나 모두 경험해봤는데, 아주 높은 수의 알코올 유경험자는 반복적으로 술을 먹지만, 마리화나 경험자는 이 반복률이 현저하게 낮다고 한다(마리화나 판매하는 사업자한테는 customer retention rate가 낮기 때문에 좋지 않겠지만…). 또한, 2016년 기반의 데이터에 의하면, 이미 마리화나를 합법화 한 주에서는 주민의 폭음률이 전국 평균보다 9%, 마리화나 비합법화 주보다 11%나 떨어졌다고 한다. 이런 트렌드를 보면, 더 많은 주가 마리화나를 합법화할수록 미국 전역의 폭음률은 떨어질 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실은, 이런 데이터는 연방정부가 레저용 대마초를 합법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좋은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음주는 중독성도 강하고, 이로 인해 인사사고가 해마다 자주 발생하는데, 중독성도 약한 대마초를 통해서 폭음률을 떨어뜨리는 건 왠지 정부가 해야만 하는 일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 글 초반에서 언급한 리글리 씨의 마리화나 회사 투자도 재밌는데, 얼마 전에 세계 7대 맥주 제조회사 몰슨쿠어스가 캐나다 시장을 대상으로 마리화나 맛의 무알코올 음료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코로나 맥주를 만드는 Constellation사도 얼마 전에 Canopy Growth라는 상장된 캐나다 대마초 제조업체에 4조 원 이상을 추가 투자하면서, 마리화나 맛 음료에 대한 강한 믿음을 발표했다. 이런 시장의 움직임을 보면 앞으로 마리화나 맛 과자, 음료, 스낵 등이 개발되면서 포화한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한국은 아직 멀었다. 별거 아닌 것도 이상할 만큼 규제가 강한데, 마리화나가 한국에서 합법화? 잘 모르겠다.

TechCrunch>

일을 하는 시스템 만들기

$
0
0

우리는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모바일 앱 중 하나인 개인 간 직거래 마켓플레이스 당근마켓의 투자자다. 스트롱이 항상 그랬듯이, 당근마켓도 시장과 제품을 보고 투자했다기보단, 이 팀의 공동창업자 김용현, 김재현 님을 보고 투자했는데, 아주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분이 local 시장에 대한 경험과 이해도도 높고, 성향과 스킬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상호보완하는 팀플레이가 매우 좋다.

내가 항상 이 회사에 대해 놀라는 건, 다른 회사들이 사용하는 자원의 절반으로 2배 이상의 성과를 만드는 lean 한 팀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일당백을 할 수 있는 좋은 인력이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회사의 많은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는 점인 거 같다. 얼마 전에 당근마켓 김재현 대표님이 이런 이야기를 나한테 했다. “우리 회사 직원이 모두 무인도에 6개월 동안 갇혀서, 그 동안 누구도 회사 일을 할 수 없어도 당근마켓 서비스의 성장이나 매출, 그리고 모든 수치는 전혀 영향받지 않고 자동으로 돌아갈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실은, 당근마켓 뿐만 아니라, 적은 인력으로 항상 더 많은 걸 해야 하는 모든 스타트업이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우리 투자사를 하나씩 비교분석해보지 않았지만, 매우 많은 회사가 사람이 – 특히, 대표이사가 – 직접 개입해서 모든 걸 처리해야 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물론, 시작은 모두 이런 노가다로 시작하지만,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하는 일을 줄이면서 시스템이 일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전환이 참 쉽지 않은 거 같다. 현실은, 아직도 대표이사나 담당 직원이 아파서 하루만 회사를 비우면 회사 지표에 큰 타격을 받는다. 담당자 아니면, 그 업무에 대해 회사 내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누가 잠깐 휴가를 간 동안 회사 업무가 마비되는 것도 나는 여러 번 봤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을 시스템이 할 수 있도록 자동화 해야 하고, 여기에서 그 스타트업의 개발력이 크게 기여한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이 이게 가능한 건 아니다. 개발력이 약한 회사는 항상 노가다 모드로 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성장에 명확한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팀이 모두 자고 있을 때도 회사는 성장을 해야 하는데, 시스템으로 일하지 않고 몸으로 하면 하루에 24시간 이상 일을 못 하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는 대표이사의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필요하다. 시작할 때는 돈도 없고, 시스템을 만드는 거보다 그냥 전 직원이 직접 몸으로 뛰는 게 더 쉽겠지만, 어느 순간이 오면 시스템을 만들고,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개발팀에 어느 정도의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어떤 비즈니스는 직접 물건을 만들거나, 포장하거나, 배달해야 하는, 오프라인 프로세스 위주라서 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고 하는데, 이런 비즈니스도 최대한 많은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시스템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회사의 성장은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비용 위에서 이루어지고, 이런 구조의 비즈니스는 큰 기업가치를 만들 수가 없다.

모든 창업팀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면 좋을 거 같다.
“우리 회사가 단체 해외 워크숍을 가는데, 비행기가 무인도로 추락해서, 여기에 3개월 동안 고립된다면, 우리 회사의 매출과 성장에 얼만큼의 지장이 있을까?”

물론, 모든 회사가 타격을 입을 것이지만, 어떤 회사는 그 타격의 강도가 그나마 견딜만하고, 어떤 회사는 무인도에서 탈출하면 다시 돌아갈 회사 자체가 없을 것이다.

유료 POC

$
0
0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안 나는데, 2011년도였던 거 같다. 뮤직쉐이크의 랜덤 음악 작곡 기능을 하드웨어에 장착해서 조금 고급 장난감으로 만들면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었고, 이 컨셉이 시장에서 통할지 궁금해서 장난감 박람회에 몇 번 나갔다. 여기서 장난감 관련 회사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중에 디즈니에서 연구개발(R&D)를 담당하고 있는 Disney Imagineering 분들을 만났다. 실은 이 부서의 주 업무는 디즈니랜드와 디즈니월드 테마파크의 시설과 기구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건데, 디즈니 지적재산권을 이용해서 장난감 만드는 업무도 같이 하고 있었다.

같은 LA에 있었고, 마침 디즈니도 자사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을 다양한 방면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우리는 간단한 키보드가 장착되고, 이 키보드를 이용해서 다양한 디즈니 음악 리믹스 버전을 자동으로 또는 쉽게 만들 수 있는 장난감에 관해서 이야기 했다. 그리고, 실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POC(Proof of Concept) 제작인데, 하드웨어는 디즈니의 협력사가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는 우리가 만들어서 제공하기로 했다.

한국도 스타트업들이 대기업과 POC를 많이 진행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은 본인들이 만들고 있는 제품이 정말 현업에서 필요한 제품인지, 그리고 창업할 때 예상했던 것 만큼 시장이 존재하는지를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이다. 물론, 잘 되면, 그 대기업이 우리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대량으로 구매할 기회도 있고, 운이 조금 더 좋으면, 회사를 통째로 인수해버릴 수도 있다. 또한, 우리보다 경험도 많고, 시장을 잘 알고 있는 대기업 담당자들의 현실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아서 우리 제품에 잘 녹일 기회이기도 하고, 회사 연혁에 “S 기업과 POC 진행” 한 줄을 더 추가할 수도 있다. 우리한테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대부분 무료로 진행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무료로 진행하는 게 정말 맞는 방법일까? 위에서 말한 디즈니와의 POC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디즈니에서 먼저 견적을 요청해왔다. 그리고 같은 LA에 있었지만, Disney Imagineering 사무실과 하드웨어를 프로토타이핑 해주는 협력사까지 차로 이동하는 주유비, 만약에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가야 한다면 비행기 표와 호텔체재비까지 다 제공해주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게 우리만을 위한 예외사항이 아니라, 그냥 회사에서 POC를 진행하는 스탠다드한 프로세스였다. 실은, 최종 견적은 우리가 처음 제시한 견적보다는 깎였지만, 소중한 회사의 자원을 이 POC에 할애하면서 뮤직쉐이크에 최대한 손해가 가지 않게 하는 우리의 의지이자, 디즈니의 배려였다고 생각한다. 결국 POC만 하고, 실제 제품에 적용되진 않았는데, 만약에 이걸 무료로 진행했다면 정말 회사에는 시간 낭비로 끝났을 것이다.

한국도 POC를 요청하는 기업들이 비용을 기꺼이 지급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 앞장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들한테는 1년에 하는 수백 개 POC 중 하나겠지만, 이 POC를 하는 스타트업은 여기에 회사의 모든 자원, 피, 땀, 그리고 꿈을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게 잘 되면 대기업과 계약을 맺고, 크게 성장할 기회가 주어지겠지만, 그건 그때 까서 고민하고 기뻐할 일이다. 그리고 내 경험에 의하면, 본인의 실적을 만들고 회사 내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대기업 담당자는 스타트업한테 말도 안 되는 장밋빛 그림을 팔고, 무료POC를 진행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정말로 진지하게 스타트업의 기술을 검토하고 있고, POC를 하고 싶으면, 시키는 사람도 어느 정도 의지와 책임감을 보여야 하는데, 그 최소한의 성의는 유료 POC에서 시작한다. 스타트업 대표들도 POC를 진행하게 되면, 당당하게 비용을 요구해야 한다.


좋은 경쟁

$
0
0

얼마 전에 아마존과 월마트가 만든, 비슷한 분야지만 성격은 다른, 두 개의 특허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하나는 아마존의 ‘스마트 냉장고’ 특허다. 여러 가지 화학 센서를 이용해서, 냉장고가 음식의 신선도나 곰팡이 레벨을 감지하고, 만약에 상한 냄새가 나면, 이를 주인한테 자동으로 알려주는 그런 특허다. 냉장고에 항상 음식을 꽉꽉 채워둔다면, 이 상한 음식이 어디에 있는지 자세한 위치와 이미지까지 자동으로 전송해 줄 수 있고, 아마도 이 사용자의 과거 구매 이력을 기반으로 같은 제품을 아마존에서 자동 주문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월마트의 특허는 ‘드론 미니바’ 관련 기술인데, 월마트가 일반 가정에 작은 매대를 설치하고 이 가정에서 필요할 만한 물건들을 예측한 후, 드론을 활용해서 매대에 물건을 자동으로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호텔 미니바와 같이 이 매대에 있는 물건을 누가 사용하면, 그때 자동으로 과금이 되며, 너무 오랫동안 구매되지 않으면, 다시 드론이 자동으로 반품 처리한다.

실은, 두 개 다 미래지향적인 특허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기술의 역사를 봤을 때 위의 특허가 적용된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 같다. 몇 년 전에 우리가 상상만 하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으니까. 근데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고, 아마존과 월마트가 10년, 20년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서 정말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 회사는 오랫동안 독보적인 위치를 즐기면서 조금 방심했고, 이로 인해 시장 점유를 많이 잃었기 때문에 더는 미끄러지지 않고, 시장을 다시 탈환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 다른 회사는 인터넷 서점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플랫폼 사업의 도사가 되어, 전 세계를 다 먹을 기세로 기존 플레이어들의 시장을 뺏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시장을 빼앗는 회사나, 뺏기지 않으려는 회사나, 똑같이 정말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두 회사에는 생존이 걸린 박 터지는 전쟁과도 같겠지만, 우리 같은 소비자가 밖에서 보기엔 좋은 경쟁이다. 어쨌든 이런 전쟁을 통해서 결국 이득 보는 건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스마트 냉장고를 만들면, 월마트도 비슷한 제품을 만들 것이고, 이 두 회사는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경쟁을 할 것이다. 결국, 소비자는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좋은 제품을, 아마존과 월마트의 경쟁 때문에 저렴하게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월마트가 드론 미니바를 만들면, 아마존도 비슷한 걸 만들거나, 또는 이보다 더 편리한 서비스를 만들 것이다. 그러면, 월마트나 구글이 더 상상하기 어려웠던, 기발한 제품을 출시할 것이다. 회사들에는 전쟁이지만, 소비자한테는 너무나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나는 크고 작든 간에, 모든 회사가 이렇게 경쟁하면서 없던 시장을 새로 만들어서 키우고, 이미 있는 시장을 더 키우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경쟁에 지면 없어지는 회사도 생기겠지만, 이렇게 해서 시장을 만들고 키우면, 이 시장에서 또 새로운 회사들이 생겨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이런 과정이 계속 되풀이되면서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99 의지, 그리고 1 운

$
0
0

얼마 전에 내가 샌프란시스코 Creator 식당에 대해서 짧게 트윗한 적이 있다. 수제버거 식당인데, 다른 버거 식당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사람이 햄버거를 만드는 게 아니라, 로봇이 햄버거를 만든다는 점이다. 나는 아직 이 식당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주변에 여기서 버거를 먹어 본 분들의 말에 의하면, 인생 최고의 버거는 아니지만, 사람이 만든 꽤 맛있는 수제 버거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얼마 전에 Creator 식당과 이 식당에서 사용하는 로봇 셰프를 만든 Momentum Machines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 근래 읽었던 기사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관심 있는 분은 직접 기사를 읽길 권하는데, 어릴 적부터 뭔가에 깊은 관심이 있는 젊은이가 비전문 분야에 대해서 깊게 독학하고, 차고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가능성이 많은 사업을 만들고, 투자를 받고, 실제 그가 갖고 있던 비전을 실현하는 전형적인 창업가의 이야기다. 그리스 이민자의 아들 Alex Vardakostas의 부모님은 캘리포니아에서 햄버거 가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였고, 알렉스는 부모님 가게에서 어릴 적부터 열심히 알바를 했다. 이 영향 때문인지, 크면서 햄버거를 만드는 로봇 셰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주위의 반응이 모두 냉담했기 때문에, 그냥 본인이 직접 한 번 만들어보기로 했다.

부모님 집 차고에서 알렉스는 다양한 전문 서적을 직접 읽고, 싸구려 부품을 사서 책에서 읽은 걸 구현해보고, 잘 안되면 다시 관련 서적을 보면서, 본인이 만든 프로토타입을 계속 개선해나갔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우연한 만남과 기회를 통해서 하드웨어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들의 도움으로 계속 로봇셰프를 만들었다. 그리고 2년 후 실제로 작동되는 로봇을 스스로 만들었다. 이제 실제 양산을 하고, 이걸 비즈니스로 만들려면 펀딩이 필요해서 실리콘밸리의 하드웨어 악셀러레이터 중 하나인 Lemnos Labs와 미팅을 했는데, 그 미팅에 대해서 Lemnos의 파트너는 “첫 프로토타입은 싸구려 부품을 여기저기 붙여 만들어서 볼품없었지만, 노트북에서 햄버거 주문 버튼을 누르자, 이 기계가 실제로 작동했고, 로봇이 만든 햄버거가 포장되어 나왔다. 차고에서 한 명이 이걸 만들었다는 건 놀랄만한 공학의 위업이라고 생각했다”라고 기억한다. 그가 5천만 원의 시드펀딩을 했고, 이후 알렉스는 기계를 더욱더 정교하게 만들어서 상용화했고, 그 이후에는 Google Ventures와 Khosla Ventures의 후속 투자를 받았다.

대단한 의지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로봇 공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공학 박사학위가 있는 창업가도 아니지만, 뭔가 파고 들어가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남들이 다 힘들다고 생각하는 수제 햄버거를 만드는 로봇을 혼자 만들었다. 그것도 독학으로. 또 한 가지는, 알렉스는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그림을 갖고 투자를 받은 후에, 프로토타입을 만든 게 아니다. 없는 살림에 어떻게 해서든지 외부 투자 없이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가능성을 증명하고, 그 이후에 투자를 받아서 사업을 했다. 실은, 요새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창업가를 찾긴 쉽지 않다. 일단 투자를 받아서 뭔가를 만들려고 하지, 그 전에 본인의 아이디어를 증명하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

항상 느끼지만, 역시 사업의 99는 의지인 거 같다. 머리는 의지를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이걸 잘하면, 나머지 1인 운은 그냥 따라서 오는 것 같다.

벤치마크의 길

$
0
0

이 분야에서 일한다면, 특히 VC들은 대부분 읽었거나 알고 있는 내용일 텐데, 얼마 전에 Benchmark Capital의 새 펀드에 대한 기사를 WSJ에서 읽었다. 나는 벤치마크나 여기 파트너들을 개인적으로 잘 알진 못하지만, 울림이 있는 내용이라서 몇 자 적어 본다.

벤치마크 캐피탈은 역사도 깊고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존경받고 명망 있는 VC 하우스 중 하나이다. 몇 가지 숫자를 나열해보면, 2011년 이후에 벤치마크가 투자한 회사 중 10개가 IPO를 했고, 15개가 인수됐다. 엑싯한 이 25개 회사의 총가치는 60조 원 이상이고(2014년 1월 기준), 지난 10년 동안 벤치마크의 8개 펀드는 투자자에게 약 25조 원을 배분했는데 수익률이 1,000%라고 한다. 특히, 2011년도에 만든 5.5억 달러(약 6,000억 원)짜리 펀드는 우버, 스냅, 위워크와 같은 유명한 유니콘에 투자했고, 이 펀드는 투자자들의 돈을 이미 25배나 불려줬다고 한다. 모두 다 부러워하는 벤치마크가 드디어 새로운 펀드를 내년 초에 만든다고 발표했는데, 두 가지 사실이 흥미롭다.

일단 펀드 규모다. 소프트뱅크는 100조 원짜리 펀드를 만들었고, 이 영향으로 대부분의 큰 VC는 펀드 규모를 엄청나게 키우고 있다. 세쿼이아도 미국 VC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9조 원짜리 펀드를 만들고 있고, 다른 VC도 모두 몸집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벤치마크는 원한다면 충분히 조 단위 펀드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이번 펀드도 기존 펀드와 비슷한 6,000억 원 수준일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건 타이밍이다. 시장에 워낙 돈이 많이 풀렸으니까, 많은 VC가 기존 펀드를 소진하지도 않고, 계속 신규 펀드를 만들고 있는데, 벤치마크는 서두르지 않고, 기존 펀드를 소진하고 새 펀드를 만드는, 항상 하던 대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 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왜 벤치마크가 새 펀드를 만들지 않는지가 업계의 관심사였다.

수조 원을 쉽게 모을 수 있지만, 펀드 규모를 키우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벤치마크 6명의 파트너는 본인들이 가장 잘하는 초기 투자와 소수의 투자사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가 위해서라고 한다. VC들의 운용보수가 전체 펀드 규모의 2%임을 고려하면, 펀드 규모를 일부러 키우지 않는 건 스스로 보수를 제한하는 건데, 이것도 참 보기 드문 사례인 거 같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VC는 운용보수를 더 가져가기 위해서 능력도 없는데 일부러 펀드 규모를 키우고 여러 개의 펀드를 만드는데, 이와는 완전히 반대인 셈이다. 아마도 벤치마크의 파트너는 운용보수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좋은 회사에 투자해서 성과보수로 돈 벌 자신이 있으니까 그런 거 같다.

모두 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생각으로, 돈이 있으니까 일단 펀드를 키우는데, 벤치마크의 이런 자세는 – 스스로의 철학과 색깔을 유지하면서,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계속 집중하기 – VC인 나도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분위기에 휩싸이지 말고, 나만의 색깔과 생각을 계속 유지하면서 한 우물만 파는 건 일이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

좋은 판단의 형성

$
0
0

지난 주에 벤치마크에 대해 포스팅했는데, 여기서 언급한 WSJ 기사에서 벤치마크의 파트너 Bill Gurley가 – 참고로, 많은 동료 VC의 존경을 받는 투자자다 –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올바른 판단은 경험에서 나오고, 경험은 틀린 판단에서 나온다(good judgment comes from experience, which comes from bad judgment).”

이걸 내 탐라에 올렸는데, 상당히 많은 호응을 얻었고, 많은 분이 이 말에 동의했다. 실은, 일을 좀 해 본 사람들이라면 – 특히, 스스로 뭔가를 시작한 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창업가 – 누구나 다 경험해 봤을 것이다. 단지, 이렇게 세련되고 멋진 말로 표현을 못 했을 것이다.

아마도 빌 걸리 본인이 벤치마크에서 좋은 회사에 많이 투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에 그만큼 실수를 많이 했고, 나쁜 투자를 많이 했고, 거기서 나온 통찰력과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 거 같다. 이 업계에서 “이왕 실패할 거면, 빨리 실패하고, 이왕 할 거면 아무도 모르는 작은 실패보단, 누구나 다 아는 그런 큰(=spectacular) 실패를 해라”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데, 같은 맥락인 거 같다. 실패가 커야지만, 그로 인한 쓰라린 아픔과 기억이 생기고, 이게 몸과 마음속에 남았을 때 소위 말하는 ‘경험’이 되는 거 같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얻은 경험은 미래의 좋은 결정과 판단을 위한 자양분이 된다.

투자를 해 본 분이라면 누구나 다 이런 경험이 있을 텐데 나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7년 동안 한국과 미국의 9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이 중 잘 엑싯한 회사도 있고, 비즈니스를 아주 잘 하는 회사도 있지만, 실은 망한 회사도 많고, 잘 안 되는 회사가 더 많다. 대부분의 펀드 상황은 비슷할 텐데, 우린 극초기 투자라서 그런지 시간이 갈수록 그 편차는 더욱더 커지는 거 같다. 우리 투자사 중 망했거나, 또는 현재 힘든 회사들을 보면 기업이 창업 순간부터 갖게 되는 태생적인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 한 거 같다. 시장의 리스크, 팀의 리스크, 펀딩의 리스크, 기술의 리스크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는 비단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런 리스크는 누구도 언제, 어떤 강도로 회사에 닥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다가 회사가 잘 안 되면 정말로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무책임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판단을 초기부터 잘 못 한 경우도 있다. 개인적인 편견, 과거의 경험, 쓸데없는 고집, 경직된 사고 등으로 인해 잘못된 투자 결정을 해서 이 회사가 잘 안 되는 경우인데,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이런 경험이 적다곤 할 수 없다(여기서 구체적인 예를 하나씩 들진 않겠다). 확신을 하고 성공할 거라고 믿은 회사에 투자했는데, 앞에서 언급한 그런 통제할 수 없는 리스크 때문이 아니라,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투자 때문에 회사가 망한 경우가 있다. 또한, 확신을 갖고 절대로 안 된다고 판단해서 투자하지 않았는데, 이 회사가 완전 잘 된 경우도 수없이 많다. 이럴 때마다 나는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아야지”라는 다짐을 하고, 이후 비슷한 회사나 창업가를 볼 때 그 이전의 경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즉, 실수로 인해 경험이 생기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좋은 판단을 하는 것이다.

이런 배움의 과정은 시작과 끝이 없다. 죽을 때까지 계속 반복되면서, 경험이 더 풍부해지고, 이로 인한 판단의 정확도 또한 정교해지는 거 같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투자할 기회가 있었지만, 투자하지 않은 회사가 굉장히 잘 되면, 후회하면서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이와 거의 같은 회사를 다시 검토했을 때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투자를 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런데 또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똑똑한 투자자라면 왜 이전 회사는 잘 됐는데 이 회사는 안 됐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계속 생각과 연구를 하면서 더 수준 높은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완벽한 판단을 할 순 없어도, 나중에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판단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유는 항상 있다

$
0
0

대표이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과 질문을 했을 것이다. “저 회사는 우리보다 매출도 작고, 문제를 푸는 방법도 새롭지 않은데, 왜 저렇게 사람들이 열광할까?”

우리 투자사 대표도 이런 분들이 가끔 있다. 본인은 30억 밸류에이션에도 거의 12개월 이상 투자를 못 받고 있는데, 비슷한 카테고리에 속한 경쟁사는 300억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너무 쉽게 받고, 매출도 우리보다 작은 거 같은데, VC들이 투자하지 못해서 난리인 걸 보면 정말 화도 나고 세상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한테 그 이유를 물어본다.

실은 나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 회사가 밸류에이션이 얼마인지, 왜 투자를 받았는지, 왜 우리 투자사보다 인기가 많은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냥 우리가 그 회사보다 못하니까 투자를 못 받은 거니까 더 열심히 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대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다. 그냥 막 억울하고, 세상은 불공평하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좋은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이걸 다른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음에 상당히 분개하는걸 여러 번 봤다.

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어떤 회사는 큰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잘 받고, 어떤 회사는 낮은 밸류에이션이라도 투자를 못 받으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경쟁사의 제품을 자세히 분석해 사용해보면, 우리가 미쳐 구현하지 못하고, 캣치하지 못 한, 고객들이 유용하게 생각하는 기능이 있는 경우가 있고, 정말 별거 아니지만, 아주 미세한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들 수도 있다. 실은, 많은 대표이사가 이런 걸 잘 모르고,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나는 자주 봤다. 현재의 매출은 우리 회사가 더 많이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 회사는 경쟁사보다 스케일을 만들기 힘든 태생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투자받기가 힘든 경우도 있는데, 많은 대표가 우리도 투자만 받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본인이 느끼는 불공평과 불합리를 정당화한다.

어떤 회사는 정말로 우리 회사보다 매출, 성장, 인력 등이 한참 떨어지지만, 대표이사가 영업을 너무 잘하고, 펀드레이징을 잘한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불공평하다고 하면 안 된다. 후진 제품과 실적으로 투자를 잘 받는 것도 분명히 능력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회사가 우리보다 투자도 잘 받고, 남들이 더 알아주는 거에 대해서 전혀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이유를 나만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그냥 우리나 잘하면 된다. 남 비판은 그만하자. 시장은 거짓말을 안 한다.

Viewing all 648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